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성경

이슬람과 기독교의 교리적인 측면에서 비슷한 점, 다른 점이 있을까?

빛나는향기 2024. 3. 25. 20:37
반응형

출처: https://isaacinseoul.com/2015/02/25/내가-믿는-기독교-연재-1-이슬람과-기독교/

꾸란과 성서는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를까요? 이번에는 조금 길지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먼저 모세를 통해 비교해 보자. 성서(신 34:10-12 )와 꾸란(19:51)은 모세를 예언자, 사도, 선지자로 칭한다.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자로 꼽히는 모세는 성서와 꾸란에 탄생부터 죽음까지 모두 적혀있다. 모세의 탄생 배경, 가족 관계, 강을 통해 파라오의 왕의 아들이 되는 장면, 피신 후 이드로와 만남, 출애굽 등 큰 이야기 줄기들의 소재는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모세에게 계시된 하나님은 차이가 있다. 여기서 알라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의 차이가 분명히 나타난다. 출 3:4-6, 13-15에서는 인간인 모세의 질문에 신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세를 통해 상호관계를 맺는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스라엘의 언약적, 기념적인 이름인 여호와(YHWH)가 계시된다. 꾸란 20:11-14에서는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는 모세에게 알라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섬기라는 계시가 있었다. 꾸란에서는 성서와 달리 일방적인 명령을 전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속하지 않는 이들을 대부분 민족, 나라의 이름으로 지칭하는 반면 이슬람교는 유일신 개념을 극단적으로 반영하여  알라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동족, 이집트 꼽트교도들은 적으로 표기한다. 이는 모세가 이집트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 2:11-12은 히브리인과 이집트인으로 기록하고, 꾸란 28:15, 18-19은 그의 편, 그의 적, 두 사람의 적으로 지칭한다. 또한 꾸란 20:80에서 알라 하나님이 이집트인을 부를 때도 적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명칭 이외에도 꾸란에 파라오가 “만일 네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긴다면”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유일신 사상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으며, 꾸란의 교리에서 유일신 사상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칭되는 장면으로 성서에서는 유일신 사상에 집중되어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언약의 관계를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하고, 애굽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표징과 이적을 행하여 심판하는 것이 목적이다(출 7:3-5).

모세 이야기에서 한 가지 더 살펴보자면, 금송아지 숭배 장면을 비교할 수 있다. 성서(출 24:14-15)와 꾸란(7:142)에서 모세는 동일하게 아론에게 이스라엘 맡기고 구름이 가린 산에서 40일 동안 머무른다. 성서(출32:21)와 꾸란(7:148, 150-151, 154)은 금송아지를 신으로 삼은 것을 죄라고 밝힌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숭배한 이들은 우상숭배와 관련 없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한다(출 32:26-28,35, 꾸란 7:155). 이를 통해 성서와 꾸란은 피조물로 창조주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철저히 금지한다는 점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예수를 통해 성서와 꾸란을 비교해 보자. 꾸란(19:17, 19)에는 성서(눅 1:26-31)와 동일하게 동정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한 장면이 나온다. 꾸란(19:30-33)은 의심스럽게 잉태된 아기 예수가 유대인들의 조롱에 대해 스스로 자신의 사명을 말하는 기적을 보인다. 성서에서 아기 예수의 기적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누가복음(2:8-19, 25-35, 36-38)에서 예수를 천사의 말을 전하는 목자, 성령의 지시를 따르는 경건한 자 시므온, 나이가 많은 선지자 안나를 통해 구주인 그리스도, 주의 그리스도, 주의 구원, 예루살렘의 속량이라는 것을 밝힌다. 꾸란의 예수는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며, 성서의 예수는 신비한 존재를 통해 혹은 오랫동안 계시를 기다린 타인에 의해 존재를 증명한다는 점이 다르다.

꾸란과 성서는 예수를 굉장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꾸란은 예수의 탄생을 아담과 하와의 탄생과 연계시켜 완전한 인성으로 본다. 아담과 하와도 각각 정자와 난자 없이 존재했지만, 신성이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자 없이 태어난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될 수 없다고 한다(꾸란 3:59). 꾸란에 23회에 걸쳐 마리아의 아들로 언급되며 예수를 인성으로 간주하는 증거들을 기록하여 예수는 단지 알라 하나님의 사도이며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강조한다(꾸란 19:30, 4:171, 19:35, 112:1-4, 5:75, 19:36). 예수에게 신성이 부여된다면 신을 복수로 나타내야 하므로 이는 이슬람에서 강력한 죄가 된다. 결론적으로 꾸란에서는 예수의 신성을 강력히 부정하고,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는 자들은 징벌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한다(19:37, 5:17, 19:88-91, 5:72, 9:30, 19:34-35, 3:59-63).

그렇다면 성서에서는 예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가 신약에서 예수로 성취된 것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이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 메시아 예표로 여자의 후손(창 3:15), 모세의 놋뱀 사건(민 21:1-20), 고난 받는 종(사 53) 등이 있다. 신약은 마 4:3; 8:29; 막 1:1; 요 11:4; 행 9:20; 갈 2:20; 히 4:14 등 많은 부분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지칭된 것을 찾을 수 있다. 예수의 인간적인 모습들도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울었고(눅 19:41, 요 11:35, 히 5:7), 배가 고팠고(눅 4:2, 막 11:12), 잠을 잤고(마 8:24, 막 4:38, 눅 8:24), 죽었다(마 27:50, 요 19:33, 롬 5:8). 이슬람에서 유일신 사상이 중요한 것처럼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가 신앙의 근본원리이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어떻게 되는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성육신에 의한 인간이자 신이라 여긴다. 그는 참 신이며 참 사람이다. 신인 양성이 혼돈 또는 혼합되지 않으며 구별되지만, 하나님과 한 분이다. 결국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부에게서 나셨고,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아버지와 동일한 본성을 가지시며 하나님아버지와 구별된다(요 1:1-3).

꾸란에도 성서와 동일하게 십자가 사건이 있다. 그러나 굉장히 다르게 기록된다. 꾸란은 예수가 이스라엘에서 기적을 행하자, 그들이 죽이려 했다고 밝힌다(꾸란 5:110).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자 알라 하나님께서 죽음을 막으려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막았다고 한다(꾸란 3:54, 5:110). 알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살해하려 했던 유대인(성 바르나바에 의하면 로마 병정이 유다를 체포함)을 예수의 형상으로 보게 하여 그를 십자가에서 살해하도록 했다(꾸란 4:157). 예수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 알라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3일 동안 잠들게 하고 들어올림을 받았다(꾸란 3:55, 4:158). 이슬람은 예수를 알라 하나님의 보호와 영광을 받은 오점이 없는 존재로 여긴다.

또 예수는 심판의 날이 임박했을 때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이 신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단지 사도이자 한 인간이라는 것을 밝힌 후 자연사하여 알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꾸란 4:159). 아부후라이가 전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어록에 따르면 예수가 무슬림에게 잠시 동안 재림하여 꾸란을 잣대로 인간을 심사하고 십자가를 파괴할 것이라고 한다. 또 예수가 재림할 때 재물이 넘쳐흘러서 비무슬림에게 세금을 징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싸이드 알리 아쉬라프는 무함마드의 말을 인용하여 부활한 예수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불신자 닷잘을 살해하고 모든 사악한 권력을 파괴한 후 온 세상을 통치할 것이라 했다. 꾸란에서 예수는 죽지 않은 상태로 들어올림을 받아 부활했고, 잠깐 재림할 것이라고 말한다.

성서에서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라는 뜻이며,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요 1:41)이다. 예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로 나신 분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다. 고향나사렛에서 요셉과 마리아와 30년의 사생활을 보내고, 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 12명의 제자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했다. 결국 예수는 가룟유다에 의해 로마 군병에 넘겨지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성서는 꾸란과 달리 예수의 죽음을 명확히 기록한다(마 27:35, 막 15:22-25, 눅 23:33, 46, 요19:18, 30). 죽음 이후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도 기록되어 있다(마 28:5-6, 요 20:18, 행 1:9-11, 계 22:20).

모세에서 비슷한 내용이 많았던 성서와 꾸란은 예수라는 인물에서 소재만 동일할 뿐 큰 차이를 보인다. 두 경전에서 예수를 특별한 인물로 나타내고 있지만, 예수의 본성에 대한 차이는 죽음과 부활과 재림까지 이어진다. 한편 꾸란에서 예수를 인간으로 단정하지만, 부활과 재림이 나타나는 것이 특이하다. 꾸란의 ‘알라 하나님 한분 외에는 어떤 신도 없다’는 유일신 사상은 예수에게도 적용된다. 또한 예수가 자연법칙 안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신성을 부정한다. 아부 후라이, 싸이드 알리 아쉬라프는 예수의 재림 때에 적(불신자, 사악한 권력)을 처단하고, 신자들이 부유하게 되는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라고 여긴다. 성서는 예수의 재림 때 세상의 권력과 통치를 모두 멸하고 모든 하나님의 원수(죽음까지도)가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한다(고전 15:23-28)고 말한다. 그때 피조물에게 있는 멸망의 사슬도 풀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롬 8:19-24). 꾸란은 알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한정된 재정적 특권에 초점이 맞춰지며, 성서는 예수를 믿는 자들과 피조물모두에게 있을 완전한 자유에 초점이 맞춰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