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성경

[사사기19~21장]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하면서 수습하기 바쁜 이스라엘! 기브아 사건 3탄(마지막)

빛나는향기 2020. 12. 18.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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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눈에 옳은대로, 베냐민 지파에 딸들을 결혼 시키지 않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이들은 징벌에만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이 맹세가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합니다.

 벧엘 성소로 돌아와서는 이제 점점 이성미스이 돌 번무렵아옵니다. 자신들이 한 맹세에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슬퍼서 탄식하고 통곡합니다.

이스라엘에 한 지파를 잃었다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통곡하는 것입니다. 언약백성으로 열두지파의 존속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해뜰 무렵 번제와 화목제를 올립니다. 통곡하던 이들은 왜 제단을 쌓았을까요? 관습상 전쟁 전, 후로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또는 전쟁 후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단을 쌓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제사에서 하나님께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쨋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총회 당시 했던 맹세 사항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합니다. 누구든 미스바로 여호와앞에 나오지 않은 자는 사형에 처하기로 했던 조항을 찾아냅니다.

이 조항을 지키면서, 베냐민 지파를 지킬 방법을 구상해냅니다.

이 조항에 위배되는 성읍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길르앗 야베스 성읍은 한 명도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발빠르게 움직여서 연합군 1만 2천명을 보내서 처녀 400명만 살려두고 모조리 죽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생각이 뭔지 감이 오시나요?


4개월 동안 림몬에서 지낸 600명의 베냐민 지파와 평화 조약을 서약하고 길르앗 야베스의 처녀들을 아내로 맞으라고 주었습니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의 생각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의 내전이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이라고 합니다.
모든 행동의 선택은 이스라엘이 했습니다. 그에 대한 결과를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라고 다시 원망하며 결론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남녀 성비가 맞지 않아 베냐민 지파에 불화가 일어날 것을 걱정합니다. 지파가 잘 이어져 내려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을 강구합니다.
맹세로 인해 이스라엘의 딸들을 베냐민으로 보낼 수가 없으니 다시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얼마나 고민했을까요? 이들은 맹세도 어기지 않으면서 율법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로에서 하는 절기에 춤 추는 여자들을 납치해서 베냐민 지파의 땅으로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는 방법입니다. (포도원에서 밤에 거행되는 축제이면서 처녀들이 춤을 추도록 허용하는 것은 장막절!)
처녀들을 데려갔을 때 아비와 오라비가 따지면 이 상황을 설명하고 해결해주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베냐민 지파에게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은 실로의 잔치 때 처녀들을 데려다가 다시 마을을 증건하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도 각자 자기 지파별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기눈에 옳은 대로 행동한 이스라엘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레위인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스라엘의 내전과 베냐민 지파의 존폐위기까지 겪는 사건으로 확대됩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기 보다 자기의 유익대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어떤 사건을 해결하기 보다는 자기의 의견이 먼저가 되는 악한 모습을 보입니다. 기브아 사건은 일반 백성들뿐 아니라 레위인들도 얼마나 타락하였는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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