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정보: 허셜 생스크, 역 김유기, 고대 이스라엘, 한국신학연구소.
*목차(책 전체 목차가 아닌 생략된 목차입니다)
제1장 족장 시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제2장 이집트로 간 이스라엘: 이집트 체류와 출애굽
제3장 가나안 정착: 사사들의 시대
제4장 연합 왕정: 사울, 다윗, 솔로몬
제5장 분열 왕정: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
제6장 바빌론 유수와 귀환: 바빌론에 의한 파괴로부터 유대 국가의 재건까지
제7장 헬레니즘 시대: 알렉산더 대왕과 하스모니아 왕국의 흥망
제8장 로마의 지배: 유대인 반란과 제2성전의 파괴
**책을 읽기 전! 초판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최근 동향과 고고학적 발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성서 고고학회에서는 이 책이 잘 이해되는 책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책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실있는 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정리한 내용을 보시고 의문이 생기신다면 책에 충분한 참고자료와 주석들이 있기 때문에 편리하게 더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50장은 족장들의 이야기이다. 족장 이야기는 성서 외에 외부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에 상응되는 사건들이 없다. 성서에서 찾을 수 있는 족장들의 시기는 성서에서 나온 연대기적 시기는 계산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족장의 수명이 불가능하게 길다.
레위, 모세, 아론의 3세대의 기간으로는 너무 길어서 내부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또한 연대계산방식으로 본 출애굽과 가나안은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가 잘 맞지 않는다. 성서 자체로 계산된 연대적 시기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족장이야기를 역사자료로 사용하기 보다 전승 발달과정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많은 경우 족장들은 역사적 인물보다는 특정 집단의 기원이 된 기원 인물로 추정한다. 예를 들면, 후대의 국명인 '이스라엘'로 불린 야곱, 모압과 암몬의 원조인 롯과 딸의 아들들, 에돔이라 불리는 에서 등이 있다. 이러한 자료들로는 역사를 재구성하기 어렵다. 그러나 창세기 12-50장을 성서 저자들의 시대로 반영하여 족장 이야기의 이면을 보고 전승의 발전을 조사하며 문서 이전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현대
학자들은 방법론을 개발해 왔다.
20세기 중반에 사용된 방법론은 고고학에 많이 의존했다. 그때는 족장이야기가 대체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올브라이트와 제자들, 스파이저는 족장이야기에 나오는 세부 자료들이 제 2천년대 초기의 문화 특징과 잘 맞는다고 주장했다. 올브라이트는 아모리인들의 침략이나 이주로 초기 청동기시대에서 중기 청동기시대로 급격한 문화변동이 일어났다는 '아모리 가설'을 근거로 주장한다. 당시 아모리 사람들의 이동과 아브라함의 이동을 결부시킨 것이다.
올브라이트는 아모리 가설을 바탕으로 MBI(기원전 2100-1900년)을 아브라함의 단계, MBIIB(기원전1700-1600)를 야곱의 단계로 추정한다. 올브라이트와 스파이저 등 많은 학자들은 족장이야기가 제 2천년대 초와 잘 맞는다는 주장에 근거를 2가지 제시한다. 첫째, 인명이다. 야곱, 아브라함은 흔하게 발견된다. 이삭과 요셉은 아모리어의 형태이다. 둘째,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누지에서 나온 설형문자 문서에서 근거한다. 누지에서의 문서로 올브라이트와 스파이저가 주장한 근거는 그 시대와 유사점있고 후대 관행과는 유사점이 없다. 그리하여 제 2천년대 초기에 기원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 학파들이 맞다고 주장한 근거들은 유효성을 잃는다. 올브라이트가 주장한 MBI은 광범위한 이주가 없고 자생적으로 문화적 변화를 맞이 한 것으로 고고학을 통해 감지했다. 실제로 MBI은 초기 청동기 시대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EBIV(기원전 2250-2000)으로 부른다. 그래서 광범위한 이주가 없던 이 시기는 아브람의 방랑생활과는 연관되지 않는다. 비도시적시기라고 했지만 아브라함 시기에 도시가 언급되고, 추정연도에 맞는 고고학적 유적도 찾을 수 없는 문제점들이있다. 또한 연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누지 증거는 독특한 후리 관습을 반영하지 않았기에 가치가 경감되었다.
족장들의 이름은 흔하게 다양한 시기에 나온다. 아모리 이름들은 후기 청동기 시대에도 우가릿어, 가나안어 이름으로 발견된다. 법률적, 사회적 관습으로 연대를 추정한다는 주장도 문제가 제기되었다. 자녀가 없을때 여종에게 남편을 주는 내용은 누지문서뿐 아니라 12세기 이집트문서, 기원전648년 님루드에도 나온다.
올브라이트와 동시대에 마르틴 노트와 스승 알브레히트 알트는 족장 전승의 초기단계를 파악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양한 씨족과 부족의 합병으로 형성된 더 큰 이스라엘 정착이전의 모든 전승들을 모두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개별 전승이 흡수되면서 결합과 융합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전승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궁켈의 양식비평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개별단위의 부족과 씨족의 시작부터 더 큰 규모로 통합 될때까지의 역사를 재구성한 방법론을 '전승사'라고 한다. 족장들마다 지리적인 관련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야곱은 지역의 중심부와 연관되어 있었고 남쪽으로의 확장으로 유다와 북부 네겝을 흡수하면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전승으로 들어오면서 계보로 연결된다. 남부와 북부 전승이 결합된 시기는 남부에 주어진 우선권으로 알수 있다. 아브라함이 더 오래된 족장으로 결합된 것은 유다의 다윗이 왕이 되었을때, 즉 우위에 있을 때 결합되었다고 한다. 노트는 전승사로 족장들이 실제인물이였다는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역사적 인물이라고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노트의 가정은 구두문학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오류가 노출되었다. 전승문학의 단순 구조, 복합구조는 시기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가문의 이야기인 전승의 복합체는 혈족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을 정의하고 이웃과 관계를 정의하는 복잡한 계보학적인 이야기이다. 구두 전승에서 이야기와 계보가 밀접하게 얽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계보학적인 유기적 구조, 이야기 길이, 복잡성 등이 연대나 기원을 실증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역사의 핵이 포함된 족장이야기는 구두 전승과 문서 전승의 복잡성으로 인해 사회학과 인류학의 방법론을 이용하여 연구해야한다. 문학적 형태로 만들어진 족장이야기는 관념의 산물임을 명심해야한다. 이는 역사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족장이야기의 진짜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궁켈의 오래된 전승을 식별하는 법칙을 활용하여 전승사의 양상을 볼 수 있다. 현재 문학적 맥락과 초기 맥락에 맞춰 보았을 때 후자로 이해된다면 초기 전승단계의 유물로 볼 수 있다. 기원전 1000년경 족장이야기는 공동체의 자기이해를 반영한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1150년, 기원전 1207년(이집트 왕 메르넵타 기념비)에도 존재하며 민족정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강 건너편'이라는 뜻의 히브리인으로 불리며 유프라테스 강건너편에서 온 외국인이며, 민족적 독립성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족장시대에서 인명과 지리적 언급으로 이스라엘 이전 시대와 초기 이스라엘 시대에 전승이 있다는 것을 두가지 증거로 시사한다. 첫째, 신명이 포함된 인명 형태의 기원에서 전승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J의 족장이야기는 -el이라는 신명요소를 포함한다. 족장들의 엘을 숭배한 전승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족장들의 신이 엘이라는 것이다. 엘 전승에 관하여 약 기원전 1400년경 가나안 고대 종교문서를 보면 가나안의 모든 신들 중에 최고의 신은 엘이다. 족장 이름에 엘이 포함된다는 것은 기원전 제2천년대의 원시 이스라엘 시대와 초기 이스라엘 시대의 흔적이 보존된것이다.
둘째, 족장들의 고향은 하란이다. 기원전 12세기부터는 아람사람들의 본거지였으며 신명기 26:5에서도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사람으로서'라는 구절이 언급된다. 궁켈의 원리로 역사적인 맥락을 볼 필요가 있다. 기원전 12세기 이전은 유목민과 농경민인 아모리인들이 살고 있던 지역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생활방식이나, 엘을 사용한 인명이 흔히 발견된다.
이러한 근거들로 볼때 아모리 문화에서는 이해되지만 철기 시대였던 아람 문화의 맥락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족장 전승을 궁켈의 원리에 적용했을 때 시리아-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아모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이주해 대대로 엘을 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초기 구두 전승이 이스라엘 이전 시대의 가나안에 있었다.
족장들은 허구적인 기원인물일까? 아브라함은 성서에서 인명으로만 나오며, 전승전에 있던 역사적 인물일 수 도 있다. 시대가 언제인지 알수는 없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워낙 모든 시대에 흔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왔다는 이야기는 J(야훼자료)에서 세밀하게 다뤄진다. 또한 그의 조상들은 하란 근처 도시들의 기원적인 조상인 것으로 보여진다. 아브라함은 제1철기시대에 종교유적들을 세운 사람이며, 남부와 북지 지파가 통합되면서 공통적 정체성의 창시자로 기능을 갖는다.
이삭은 인명, 부족명, 지명으로 적절하다. 아모스는 8세기 북왕국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과 병행하면서 사용하면서 지역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했던 사실을 볼 수 있다. 또한 J자료는 이삭을 남부 브엘세바 종교 유적을 설립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태어났고 중부 산지에 거주했다. 야곱은 야곱-엘의 축약형이라고 학자들은 동의한다. 중기 청동기, 힉소스 시대에서 흔히 발견된 서셈어 인명이며 후기 청동기 시대와 우갓릿에서도 발견되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된 전승은 정교한 계보 구조를 가진 초기 특징을 갖는다.
이 구조는 이스라엘에게 사회적 정의를 내려주는 목적이 있다. 야곱은 계보에서 핵심인물이며 새 공동체 기원인물인 이스라엘과 동일시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은 초기 부족 집단의 가능성도 있으며,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유입 민족으로 하여금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이스라엘의 아들 중 요셉은 인명, 부족명, 지명으로 적합하다. 영웅일 수도 있고, 허구적 기원인물 일 수도 있다. 후자를 주장하는 증거들로는 이스라엘과 유다 통합 이후 사용된 '유다의 집'에 상응한 표현으로 '요셉의 집'을 사용했다는 것, 요셉 지파의 언급이 드물고 민수기에 잠깐 나타난다는 점이다. 요셉은 지역적 영웅이 갖고 있던 인명일 가능성이 있다. 학자들은 요셉의 이야기를 그의 아들 지파에서 구두로 전해진 기원상 독립적인 이야기로 생각한다. 요셉 이야기의 전체 개요는 역사적 인물에 기반이 있을 지라도 세부 정보들은 역사소설과 더 많은 공통점이 있다. 강간미수혐의로 고발한 내용이나 꿈의 해석은 고대 문학, 미담, 신화에서 발견할 수 있고, 일곱해의 흉년은 관용적 표현으로 이집트어, 아카드어, 가나안어 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 성서에는 이집트의 생활상과 문학이 잘 드러나지 않고 저자 시대의 이집트 생활 양식이 보여진다. 허구적으로 보여지지만 비역사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집트 기록에는 요셉사건과 상응하는 이루스라는 아시아인 이야기가 있다.
또한 메르넵타의 통치시대에 문서를 통해 체쿠(고센)으로 이주한 집단의 기록이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만으로 역사적 사실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대부분 지명이고 소수의 이름은 인명이다. 아들들은 계보구조에서 전승발전 과정에서 만들어진 열두 지파의 기원인물이다. 이스라엘로 통합될 때 형제관계로 표현되었다. 이스라엘 전에 있던 곳은 후기 청동기 시대 아얄론 계곡과 벳-스안 회랑 지대 사이에 중부 산지이다. 유목민들 사이에서 전승이 발생하여 아브람(아브라함)이라는 지역영웅을 숭배했다. 이 때 이집트의 영향으로 부터 멀리 있던 원-이스라엘은 인구가 증가하여 국가적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더 큰 동맹도 형성되면서 전승들이 계보의 형식을 갖추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집합적 이름을 갖고 있던 핵심집단은 기원인물인 이스라엘이 시조의 지위가 부여되면서 야곱과 동일시 된 것이다.